오늘날 우리들 주변에는 너무나 다양한 술들이 있다. 소주, 맥주, 막걸리부터 와인, 사케 그리고 위스키와 하이볼까지,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진 이런 술들 중에서 가장 처음 등장한 최초의 술은 무엇일까.
가장 단순하게 과일을 발효시킨 것에서 시작한 와인이 바로, 인류가 최초로 마시기 시작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술이다.
그렇다면 최초의 와인은 언제 등장했을까. 아쉽게도 현재의 기술로 최초의 와인을 찾아낼 수는 없겠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가장 오래된 와인은 무려 8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목 차
1. 고대의 와인 : 인류 최초의 술, 포도주
▪︎ 흔적으로 남은 고대의 와인들
▪︎ 기록으로 남은 고대의 와인들
2. 중세의 와인 : 종교와 와인의 확산
▪︎ 와인의 부활
▪︎ 수도원과 와인
고대의 와인 : 인류 최초의 술, 포도주
2017년, 조지아와 캐나다, 미국의 고고학자들이 참여한 연구진은, 조지아의 신석기 유적지에서 발굴한 항아리에서, 와인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때 발굴한 항아리가 8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지면서, 와인의 역사는 기원전 6000년 경으로 앞당겨졌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조지아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크레브리라는 항아리를 사용해 와인을 양조하는 양조법이 전승되고 있었는데, 신석기 유적지에서 발견된 항아리에서도 유사한 양조법을 사용한 것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 발견으로 조지아의 양조법은 무려 8000년의 역사를 가진 것임이 밝혀졌고, 우리는 와인의 기원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흔적으로 남은 고대의 와인들
조지아의 와인이 발견되기 전까지 인류 최초의 포도주로 알려져 있던 것은 이란의 자그로스 산맥에서 발견된 항아리에 남은 흔적이었다. 이란의 자그로스 산맥에서는 기원전 5000년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항아리 6병에서 포도주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도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포도주와 함께 송진의 흔적이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송진이 특이한 이유는 현재 일부 그리스 와인에서 와인을 오래 보관하기 위한 보존제로써 송진을 와인에 첨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기원전 5000년 경에도 포도주에 송진을 넣으면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의도적으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 청동기 시대도 진입하지 못한 신석기시대에 와인을 만들어 마시기 시작했다는 것이 놀랍다.
기록으로 남은 고대의 와인들
조지아와 이란의 사례처럼 흔적으로 남아 우리에게 알려진 고대 와인이 있는 반면, 기록으로 남겨져 알려진 고대의 와인도 있다.
바로 메소포타미아의 와인이다. 농업의 발상지로 알려진 이곳은 기원전 4000년 경에 와인을 보관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도자기와 그 마개가 발견되기도 했지만, 와인에 대한 내용이 담긴 점토판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 점토판에는 기원전 2000년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쐐기 문자가 기록된 판으로, 와인을 거래하고, 선물하는 등 와인을 주고받았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와인에 대한 기록은 성경에도 등장한다. 대홍수를 거치고 아라랏트 산에 정착한 노아는 포도 농사를 시작했고, 포도주를 만들어 마셨다고 한다. 어떻게 포도주를 만들게 되었는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재배한 포도로 포도주를 만든 노아가 술에 취해 벌거벗은 상태로 잠에 들었고, 이를 발견한 세 아들에 대한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집트 투탕카멘의 무덤에서도 와인을 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항아리가 발견되었고, 와인의 제조과정을 표현한 벽화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집트의 와인은 고대 그리스를 거쳐 로마로 전파되었는데, 로마가 유럽 각지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현지에서 군대에 보급할 포도주를 수급하기 위해 점령지마다 포도밭을 만들면서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에서 와인 양조가 시작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고대 문명에서 와인의 흔적들이 발견되어, 와인은 인류를 취하게 만든 최초의 술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고, 고대 국가들을 통해 와인은 유럽으로 전파되어 갔다.
중세의 와인 : 종교와 와인의 확산
로마 제국의 말기,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로 지정되면서 그리스도교의 예배에 사용되던 포도주는 더욱 활기를 띠고 퍼져나갔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쇠약한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 족에 의해 붕괴되었고, 제국의 붕괴로 인해 유럽 경제가 무너지며 와인 소비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와인의 부활
지지부진하던 와인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프랑크 왕국의 등장부터였다. 게르만 족이 세운 왕국 중 하나인 프랑크 왕국은 개국 초기부터 그리스도교를 수용하면서 교황과 예전 로마인들의 지지를 받게 된다.
프랑크 왕국은 주변국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유럽 최대 왕국이 되었는데, 부르고뉴 그랑 크뤼인 코르통 샤를마뉴(Corton Charlemagne)의 이름에 유래가 된 샤를마뉴(Charlemagne) 대제가 이 프랑크 왕국의 카롤링거 왕조 2대 왕이다.
프랑크 왕국과 함께 가톨릭 또한 다시 확장하여, 와인이 다시 확산하기 시작하였고, 가톨릭 미사에 사용되는 와인을 공급하기 위해 포도원들은 수도원에 귀속되었다.
수도원과 와인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양질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며 양조 기술을 발전시켰는데, 오늘날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샴페인(Champagne)도 베네딕틴 수도회의 수도사였던 돔 페리뇽(Dom Perignon)에 의해 발전된 와인이다.
수도사들은 지속적으로 양조 기술을 발전시켰기 때문에, 와인 생산량도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여분의 와인이 생기게 되었고, 수도원은 이를 판매하여 이득을 얻음과 동시에, 와인 무역이 활발해져 유럽 전역으로 와인은 다시 확산되었고 가톨릭 미사에 사용될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음료로도 소비되었다.
하지만, 중세 유럽에서의 와인은 스페인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에서만 쉽게 접할 수 있는 술이었다. 이유는 지리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따뜻한 기후를 가진 남부 유럽에서만 포도를 재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와인은 주로 유럽의 남쪽 지역에서만 생산되었다.
이에 남부 유럽에서는 계급에 상관없이 와인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남부에서 수입해 온 와인만 마실 수 있었던 북부 유럽에서는 귀족 계급만이 와인을 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남부 유럽에서는 와인이 발전하였고, 북부 유럽에서는 포도가 필요 없는 맥주가 주로 선호되었다.